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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하이~! 여러분 샘스터입니다.

제가 지금 지내고 있는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관광으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1960년대 당시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우리나라도 필리핀처럼 한 집 건너 TV, 자동차 있는 게 소원이다"라고 말을 하기도 하였을 정도로 필리핀이랑 국가는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 시절의 대통령인 Ferdinando Marcos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많은 필리피노들은 지금 이 대통령을 많이 그리워하는데요 36년 만에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제17대 필리핀 대통령으로 2022년에 5월 당선이 되었습니다.아버지 마르코스는 제10대 대통령으로 독재정치를 21년간 하였다고 하는데.. 오늘은 필리핀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르코스 가문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의 생각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제 10대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제 10대 대통령으로 필리핀 정치이야기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약 21년간 권자를 유지한 독재자인데요. 마르코스의 임기 시절 필리핀은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룬 필리핀을 경제 폭망으로 이끌었다고 하는데요. 구소련을 비롯해 동유럽 공산국가와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재선에 성공하기까지 합니다.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독재정치를 하기 시작하였고 실망한 필리피노들은 반마르코스 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7년 동안 시위 운동을 벌인 자들을 체포하고 약 3천 명 이상이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안타가운 역사가 남아버렸는데요.. 결국 대규모 시위인하여 1986년 마르코스는 하와이로 망명하게 되었다고 3년 후 사망을 합니다. 망명당시 부인인 이멜다가 살던 궁이 공개가 되었는데.. 말도 못 할 정도로 비싼 구두 3000켤레 어마어마한 명품 그리고 모든 인테리어가 그 당시 최고급 자재였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산 타일 그리고 화장실에는 100% 황금 세면대). 그리고 킬링포인트는 21년간 해외로 빼돌린 금액이 자그마치 약 12조 7000억 원이 된다고 합니다....

동아일보 필리핀 족벌정치 기사
동아일보 기사

족벌정치

마르코스 주니어는 망명 후 5년 1991년 필리핀 대법원이 마르코스 일가를 사면하고 필리핀으로 귀국을 합니다. 그리고 본인 가분의 정치적 기반인 일로코스에서 정치적 영향을 빠르게 회복을 했다고 합니다. 사치의 여왕 이멜다는 이 지역에서 하원의원을 3번이나 연임하고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는 상하원의원을 역임했다고 합니다. 이게 가능한 건 필리핀의 독특한 가문정치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민주주의 형식을 띠고 있는 필리핀 정치인데 결국 약 150개 가문들이 권력을 나눠가지는 족벌정치라고 합니다 (이게 민주주의가 맞는지..) 이러한 이유로 마르코스 가문도 재기를 할 수 있었다네요..

마르코스 봉봉 선거운동
마르코스 주니어 봉봉

SNS를 통한 선거운동

마르코스 주니어는 이번 대선 때 초점을 맞춘 것은 바로 SNS였습니다. 필리핀은 세계에서 SNS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국가라고 합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SNS로 유세 활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문제는 SNS를 통하여 가짜 뉴스를 내보냈다는 겁니다. 본인의 아버지를 '정치천재' 그리고 독재를 미화하면서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SNS를 통해 접한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하여 마르코스 주니어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가짜뉴스의 천국이 된 플랫폼의 수혜자 마르코스라고 평가를 하였습니다.

기뻐하는 마르코스 지지자들
마르코스 주니어 지지자들

 

필리피노들의 생각

제가 가장 친한 지인 (나이는 42세)에게 필리핀 대통령을 물어보았는데 독재자란 사실은 잘못된 사실이라고 강력히 저에게 주장을 했습니다 (눈빛도 이글이글). 더 나아가 이멜다 여사의 구두는 명품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이 손수 만들어서 파는 걸 대량으로 사준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고요.. 대부분 제가 아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가져본 결과 모두들 똑같은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1960년대 필리핀
1960년대 필리핀

필리핀의 미래

마르코스 주니어의 선거 캠페인 정책 바로 "다시 함께 일어서자! 아버지의 계획을 실행하면 우리는 싱가포르가 될 수 있다" 이런 전략으로 대통령 선거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필리핀이 일본 다음으로 잘 살 수 있었던 과거에는 미국의 엄청난 경제적 원조로 그리고 풍부한 자원과 따뜻한 기온으로 농업 생산도 좋았던 1960년대는 필리핀의 정치는 너~~~ 무나 안정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0대 대통령 마르코스부터 시작된 부정부패지금까지 필리핀의 발전에 큰 족쇄인 거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듭니다. 독재자의 아들을 걱정하기보다는 필리핀의 미래는 필리핀 국민들에게 달려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요. 필리핀 국민들의 개인적인 의견과 정치의 대한 생각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르코스 주니어가 이런 과거를 가지고 과연 얼마나 필리핀을 발전하고 바꿀 수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입니다. 그래도 발전을 하길 기대하면서 그럼 이만 Ingat (Take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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